다른 컴퓨터에서 키체인을 가져오려고 할 때 오류가 발생한다.

오류 메시지는 아래와 같이 뜬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항목 가져오기를 할 수 없습니다.
이 항목의 내용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맥의 버그로 보인다.

터미널을 열고 아래와 같이 해서 해결하였다.

security import priv_key.p12 -k ~/Library/Keychains/login.keychain

security import pub_key.pem -k ~/Library/Keychains/login.keychain


출처: http://www.openradar.me/709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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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Script 3.0 class destructor

액션스크립트에는 class destructor 가 없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점 때문에 당황스럽다.

또한 가비지 컬랙션에서 지워지는 순간도 불명확하다.

더이상 싱볼의 레퍼런스가 없더라도 지워지지 않고 이벤트를 계속 받으면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문서에는 오브젝트의 삭제를 명시적으로 하고

삭제 전에 모든 Event 처리를 제거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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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오브원 (한사람의 힘)




오늘 존경하는 어떤 분 이야기를 듣다가 몇 년간 잊고 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은 ‘파워오브원(power of one)’입니다.
아마 몇몇 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은 1992년 개봉한 영화 제목입니다.

이 영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독립하기 전에 당시 남아프리카의 암울한 흑인들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둠과 암울함이 무한정 이어질 것 같은 시대적인 상황. 하지만 그들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rainmaker의 전설이 있습니다.
영화 끝에서는 남아프리카가 독립을 한다거나 하는 해피엔딩의 결론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엔딩테마가 나오면서 나오는 설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여러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독립할 때도, 우리나라가 독립할 때에도, 독일이 통일할 때에도 결국은 이런 구조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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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칼릴 지브란(1883-1931)은 예언자의 땅 레바논의 비샤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1895년 그는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2년 후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베이루트의 '지혜의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1908년 파리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을 만나 3년간 미술 공부를 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인류와 평화와 화합, 레바논의 종교적 단합을 호소했다.

젊은 시절 지브란은 빈곤과 불의와 부패, 제도화된 폴력을 규탄하며 인간의 존엄을 강조한 열렬한 인권옹호자였다. 또한 이미 20세기 초에 아름다운 지구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자연을 경배하고 보호하며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선각자였다.

자신의 영혼 속에 동양의 신비주의를 간직하고 있었던 지브란은 문학을 통해 동양과 서양을 한데 녹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영성과 물질주의를 높은 차원에서 결합시킴으로써 신비로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냈다. 그는 영혼의 양식이 결핍했던 황량한 시대에 '신의 세계가 인간의 양식'임을 외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지브란에게는 시인, 화가, 철학자, 예언자, 신비주의자, 종교가, 이단자, 저항하는 사람, 평화주의자... 등의 수많은 명칭이 따라다닌다.

초기 작품들은 아랍어로 씌여진 산문시와 희곡들로 모든 아랍권에 널리 알려져 지브라니즘(Gibranism)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지브란은 1931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칼릴지브란의 스승의 목소리 - 한국어판 표지안쪽 설명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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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목소리

심한 폭풍우가 정원에 몰아치던 어느 날 저녁
알무스타파와 그의 제자 아홉 명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불 주위에 둘러앉아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에 한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저는 외롭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발굽들이 저의 가슴을 무겁게 짓밟아 누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알무수타파가 일어나 제자들의 한 가운데에 서서
세찬 바람소리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외롭다고 하지만 도대체 너희의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너희는 이 세상에 홀로 왔고
혼자 안개 속을 헤쳐 나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너희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잔을 혼자 마셔야 하리라.
가을의 날들은 너희들 각자에게 각각 다른 잔을 주었고
그 잔들을 달고 쓴 포도주로 채웠으니
비록 그 잔이 그대의 피와 눈물로 채워진 잔이라 하더라도
그대들은 혼자서 조용히 그 잔을 마시고
그 삶의 갈증을 선물로 준 생명에 대해 찬양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그 목마름이 없었다면
그대의 가슴은 물결도 파도의 노래도 없는
황량한 바닷가의 해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니,
그대들은 그대의 잔을 혼자 기꺼이 마시라.
잔을 그대의 머리위로 높이 들고
홀로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흠씬 마시라.


한때 나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같이 어울려 다녔고
그 사람들 속에 섞여 연회석에 앉아 함께 흠씬 마셔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포도주는 내 머리에까지 이르지 못했고
내 가슴속으로도 흘러 들어오지 못했다.
그것은 오직 나의 발걸음 쪽으로 내려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지혜는 메말랐고
나의 마음은 자물쇠가 채워져 봉인(封印)되었다.
그리고 오직 내 발걸음만이 그들과 함께
그들의 안개 속에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사람들 무리에 어울리지도
그들의 식탁에서 그들과 어울려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에게 말하나니,
비록 시간의 발굽들이 그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더라도
그런 것은 그대와 상관없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대, 슬픔 속에 홀로 앉아
그대의 잔을 마시는 것이 그대에게는 더 나으리니,
그 때 그대는 또한 그대의 기쁨의 잔도 혼자 마실 수 있게 되리라.




칼린지브란 [ 예언자의 정원]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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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하다해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에는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해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왕관을 씌워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사랑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연한 가지들을
어루만져주지만 또한 그대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한답니다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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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왕조의 역사는 블랙박스의 역사였습니다.
드라마 「궁」이나 「덕혜옹주」, 「노서아가비」같은 소설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점점 그 블랙박스 안이 궁금한가봅니다.


일본은 역사소설이 많이 발달한 나라라고 느껴집니다.
허구를 추가했다는 관점보다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상황에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과 감정적인 고뇌에 많이 공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보기에 가장 인기있는 주제는 임진왜란 직전에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직전신장)로부터 시작해서 토요토미히데요시(豐臣秀吉:풍신수길)이 정권을 잡고, 그 이후에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경)가 일본을 통일을 할 때까지의 전국시대이고, 두번째로는 막부말기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명치유신)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각지의 지사(志士)들의 싸움부분입니다.
전자에는 오다노부나가, 토쿠가와 이에야스, 미야모토무사시(宮本武蔵)와 사사키고지(司馬 遼太郎)로, 다테마사무네(伊達政宗) 등등의 좋은 소재가 있고,
후자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신센구미(新選組:신선조)란 좋은 소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를 뛰어넘어 그 당시의 상황에 주인공들이 어떤 감정적인 고뇌를 했을 지를 추측해서 만들어진 소설에, 계속적인 상상이 추가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전국시대이야기는 500년이 넘도록 살이 붙여졌고
메이지유신은 150년 정도 이야기에 살이 붙여졌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살을 붙였을까요?



「노서아가비」나 「덕혜옹주」는 그런 시도로 보입니다. 역사책에 적지못하는 고종이나 덕혜옹주의 감정에 접근합니다.
덕혜옹주는 망국의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일 뿐이고, 정치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고종은 좀 사정이 다릅니다. 당시 국가의 최고 책임자였으니까요.
이제가지 고종의 평가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찾아보면 고종은 결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가 아니였습니다.

드라마에 고종만 나오면 시청률이 2~3%포인트 떨어진다고 후배 PD가 그럽디다. 고종과 조선이 부패와 무능으로 멸망했다는 일본의 논리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오염돼 있습니다. 조선은 결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종은 온몸을 던져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책임감 있는 군주였어요. 고종이 아니었다면 1890년대에 이미 일본에 먹혔을 겁니다.

박문영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작사·작곡,소설『제국의 부활-황제』집필

고종 황제를 직접 만나본 외국인들은 대체로 고종의 해박한 지식과 과감한 정치 감각에 호의를 보였다.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는 “고종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극심한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고종이 명성황후 일가에게 끌려 다녔다는 그간의 평가와는 대조를 이룬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비호를 받고 있던 친일경력자들은 의도적으로 망국의 책임을 황실에만 모는 등 황실인사들이 설 자리가 없게 했다. 이는 절대권력을 원한 이승만 대통령과 망국의 책임을 황실인사에게 책임을 몰아 냉대하였다. 친일경력자들 역시 망국의 실제적 공동 책임자인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면하려고 왕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외 공저/김영사

의문의 창덕궁 방화사건 - 1960년6월6일, 서류 조사 돌입하자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탄 이유는…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게 돼 있는 법이다. 보다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당시 대한여행사 이사장이던 오재경(작고)씨를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장으로 임명해 사무총국 개혁에 나선다. 그는 문교부 국장으로 있던 이창석씨를 데려다가 옛 황실의 재산 관련 서류를 꼼꼼히 모아 조사에 돌입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60년 6월6일 밤 서류를 쌓아둔 창덕궁 내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에 타 전소된 것이다. 불이 난 뒤 이씨는 “이것은 방화가 확실하다”고 말했지만 사건은 유야무야 덮히고 말았다.

김을한씨는 <인간 영친왕>에서 “그 뒤로 10여 년 동안에 벌써 여러 사람의 사무총국장이 파면 또는 철창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봐 구황실 재산이라는 게 얼마나 무문하고 이권의 대상이 돼왔는가 알 수 있다”며 “사무총국이 황족들에게 겨우 몇십만원의 생활비를 주며 자기 돈을 거저 주듯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욱 더, 근대역사에 대한 좋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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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추장 연설문  (0) 2010.05.21
IT/모바일 | Posted by 동물원 2010. 5. 30. 12:30

포털이 힘을 잃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사용한지 한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이

포탈의 힘이 많이 줄어들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시작하면 포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포탈을 통해서 다른 웹사이트를 찾아들어가거나 블로그로 가거나 했었죠.
야후가 시작한 이런 싸움은 '포탈을 먹는 회사가 인터넷을 먹는다'란 공식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오는 것 같습니다.
모바일이 보편화되고 트위터 같은 SNS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SNS를 시작으로 인터넷을 하게되고 있습니다.
SNS는 포탈처럼 내가 찾아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찾아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SNS내에서 검색, 카페, 채팅, 이메일 등이 모두 경계가 없이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포탈이나 카페, 블로그등은 없어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공중파방송처럼 여전히 방송을 대표하는 하나의 매개체로는 남을 것입니다만
람들은 SNS를 통해서 포탈이나 카페, 블로그 등에 들어가는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SNS를 통해서 해당되는 페이지로 바로 들어가버리니
포탈의 장점인 첫페이지에서 검색을 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겠죠.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기사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인터넷업계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웹사용자 분석업체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올 4월 기준으로 가장 인터넷을 많이 쓰는 30대 남자의 경우 1위인 네이버(NHN)는 방문자가 800만 명이다. 게임 포털인 한게임(200만 명)을 합치면 NHN의 전체 방문자는 1000만 명 수준이다. 다음은 포털 방문자가 710만 명이다. 그러나 블로그 서비스인 티스토리 방문자(370만 명)를 합치면 1080만 명으로 NHN을 넘어섰다. SK컴즈의 포털 네이트(640만 명)는 방문자 수 3위에 그쳤다. 하지만 4위인 싸이월드(610만 명)만 합쳐도 네이버와 다음을 넘어선다. 티스토리·싸이월드 같은 SNS 서비스가 업계 판도를 뒤흔드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로 먹고살기 시작한 것이 1993년 말이다.
그때는 IT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었지만 점차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게임산업은 자연스럽게 IT산업에 포함되게 되었다.

나는 벤처붐이 불기 전에 벤처를 했었다.
그리고 벤처붐이 불어오는 과정과, 그 파도와 폭풍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생생하게 봤다.
내가 낸 입김도 그 폭풍에 가해지지 않았나 하고 많은 반성을 한다.



현재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 붐이 불고 있다.
관련 도서가 인기가 많고, 관련 강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서 SNS나 모바일을 도입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다.
나는 페이스북과 아이폰으로 시작된 모바일혁명이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열풍 속에서 본질적인 면이 가려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현재의 상황은 국내의 인터넷열풍이 막 불기 시작한 95년경과 너무 유사하다.
그때 홈페이지가 가히 혁명적이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세상은 떠들썩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창업을 한다고 나왔다.
미리 벤처를 겪었던 나는 말렸지만,
이미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은 내 말보다는, 당시 흥분된 사회분위기를 더 믿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웹이 정말 세상을 바꿨다.
모든 회사는 홈페이지가 없으면 안되고, 많은 상거래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럼 그때의 친구들은 다 성공했을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일부는 다른 업종으로 이동했고
남아있는 IT업종은 과도한 경쟁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웹에이전씨는 어떤가?
95% 이상은 너무 싼값으로 발주하기 때문에 개발사도 대충 만들고,
고객사도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로 굳어져버린지 오래이다.
창의성보다는 싼 가격과 빠른 납기일이 더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3D 업종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왜 세상은 바뀌었는데 그것을 만든 주역들이 이처럼 대접을 못받는가?



얼마 전에 애플 앱 개발에 관련된 개발비의뢰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르바이트로는 받을만한 금액이지만 회사로서는 도저히 손대기 힘든 금액!

나의 주변에도 일부 친구들이 아이폰열풍을 따라 앱을 만든다고 독립을 했다.
물론 나는 말렸다.
이런 친구들은 정말 적은 금액이라도 만든다고 한다.
이런 친구들이 이미 업계 곳곳에 포진되어있기 때문에 아마 이런 가격이 시장에서 성립될 것이다.
머지않아 시장의 95% 이상은 이런 금액이 당연시 될 것이다.
요즘 앱(APP) 에이전시란 말이 돈다.
그 순간 난 웹에이전시의 전례가 눈앞에 지나갔다.
아! 앱도 웹과 마찬가지로 되는구나.



골드러시 때 돈 번 사람은 곡괭이 장사와 청바지장사밖에 없다는 말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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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교본 - 브레히트 사진시집




내게 그 길었던 전투가 끝났을 때
한 사내가 나의 귀환길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친절했어요.
그의 침묵에서 나는 배웠습니다. 그가
이해는 못하더라도 결코 동점심마저 없진 않다는 것을.




from 전쟁교본 - 브레히트 사진시집

사진설명: 실명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병사가 친절한 파푸아 원주민의 부축을 받으며 뉴기니아 부나의 전선으로부터 돌아오고 있다. 두 사내는 모두 맨발이다.




2006년쯤 전에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온 것을 구입했었습니다.
전쟁이란 사람을 파국으로 몰기도 하지만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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