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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0 [노서아가비] 누가 고종을 유약한 군주라고 하는가?
  2. 2010.05.21 인디언 추장 연설문
구한말 조선왕조의 역사는 블랙박스의 역사였습니다.
드라마 「궁」이나 「덕혜옹주」, 「노서아가비」같은 소설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점점 그 블랙박스 안이 궁금한가봅니다.


일본은 역사소설이 많이 발달한 나라라고 느껴집니다.
허구를 추가했다는 관점보다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상황에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과 감정적인 고뇌에 많이 공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보기에 가장 인기있는 주제는 임진왜란 직전에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직전신장)로부터 시작해서 토요토미히데요시(豐臣秀吉:풍신수길)이 정권을 잡고, 그 이후에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경)가 일본을 통일을 할 때까지의 전국시대이고, 두번째로는 막부말기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명치유신)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각지의 지사(志士)들의 싸움부분입니다.
전자에는 오다노부나가, 토쿠가와 이에야스, 미야모토무사시(宮本武蔵)와 사사키고지(司馬 遼太郎)로, 다테마사무네(伊達政宗) 등등의 좋은 소재가 있고,
후자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신센구미(新選組:신선조)란 좋은 소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를 뛰어넘어 그 당시의 상황에 주인공들이 어떤 감정적인 고뇌를 했을 지를 추측해서 만들어진 소설에, 계속적인 상상이 추가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전국시대이야기는 500년이 넘도록 살이 붙여졌고
메이지유신은 150년 정도 이야기에 살이 붙여졌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살을 붙였을까요?



「노서아가비」나 「덕혜옹주」는 그런 시도로 보입니다. 역사책에 적지못하는 고종이나 덕혜옹주의 감정에 접근합니다.
덕혜옹주는 망국의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일 뿐이고, 정치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고종은 좀 사정이 다릅니다. 당시 국가의 최고 책임자였으니까요.
이제가지 고종의 평가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찾아보면 고종은 결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가 아니였습니다.

드라마에 고종만 나오면 시청률이 2~3%포인트 떨어진다고 후배 PD가 그럽디다. 고종과 조선이 부패와 무능으로 멸망했다는 일본의 논리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오염돼 있습니다. 조선은 결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종은 온몸을 던져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책임감 있는 군주였어요. 고종이 아니었다면 1890년대에 이미 일본에 먹혔을 겁니다.

박문영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작사·작곡,소설『제국의 부활-황제』집필

고종 황제를 직접 만나본 외국인들은 대체로 고종의 해박한 지식과 과감한 정치 감각에 호의를 보였다.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는 “고종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극심한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고종이 명성황후 일가에게 끌려 다녔다는 그간의 평가와는 대조를 이룬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비호를 받고 있던 친일경력자들은 의도적으로 망국의 책임을 황실에만 모는 등 황실인사들이 설 자리가 없게 했다. 이는 절대권력을 원한 이승만 대통령과 망국의 책임을 황실인사에게 책임을 몰아 냉대하였다. 친일경력자들 역시 망국의 실제적 공동 책임자인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면하려고 왕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외 공저/김영사

의문의 창덕궁 방화사건 - 1960년6월6일, 서류 조사 돌입하자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탄 이유는…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게 돼 있는 법이다. 보다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당시 대한여행사 이사장이던 오재경(작고)씨를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장으로 임명해 사무총국 개혁에 나선다. 그는 문교부 국장으로 있던 이창석씨를 데려다가 옛 황실의 재산 관련 서류를 꼼꼼히 모아 조사에 돌입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60년 6월6일 밤 서류를 쌓아둔 창덕궁 내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에 타 전소된 것이다. 불이 난 뒤 이씨는 “이것은 방화가 확실하다”고 말했지만 사건은 유야무야 덮히고 말았다.

김을한씨는 <인간 영친왕>에서 “그 뒤로 10여 년 동안에 벌써 여러 사람의 사무총국장이 파면 또는 철창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봐 구황실 재산이라는 게 얼마나 무문하고 이권의 대상이 돼왔는가 알 수 있다”며 “사무총국이 황족들에게 겨우 몇십만원의 생활비를 주며 자기 돈을 거저 주듯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욱 더, 근대역사에 대한 좋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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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아닌것/역사 | Posted by 동물원 동물원 2010. 5. 21. 19:09

인디언 추장 연설문



이 글은 우리가 문맹인이라고 불렀던 여러 종족 중 한 종족의 이야기이다.

무식하고 야만적이며… 라고 들어왔던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하여 진지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인류역사상 어떤 민족에게 어려움이 다가와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도 그런 시련의 극복중의 하나이다.

이런 시련과 비교되는 민족과 시기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연과 동화되어 살며 감수성이 높았던 종족들은

인간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짐승과 마찬가지로 취급 당해야 했다.

그런 시련의 정점에 각 부족의 족장(추장)들이 있다.

 

추장들은 자신의 부족과 모든 인디언 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미덕을 끌어내야 했다.

두려움, 증오, 슬픔, 좌절 등의 감정을 누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용기, 사랑, 인내, 포용 등을 최대한 쥐어짜낸 후

그것을 이용해서 백인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이었는지는 이 글을 읽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 놓인 어려운 상황들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는 순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숙제가 얼마나 커다랗고 버거운 것이었었을까,

삶의 방식이 다른 이방인에게 논리적으로 말을 못하고

마음으로밖에 말을 할 수 없었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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