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왕조의 역사는 블랙박스의 역사였습니다.
드라마 「궁」이나 「덕혜옹주」, 「노서아가비」같은 소설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점점 그 블랙박스 안이 궁금한가봅니다.


일본은 역사소설이 많이 발달한 나라라고 느껴집니다.
허구를 추가했다는 관점보다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상황에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과 감정적인 고뇌에 많이 공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보기에 가장 인기있는 주제는 임진왜란 직전에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직전신장)로부터 시작해서 토요토미히데요시(豐臣秀吉:풍신수길)이 정권을 잡고, 그 이후에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경)가 일본을 통일을 할 때까지의 전국시대이고, 두번째로는 막부말기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명치유신)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각지의 지사(志士)들의 싸움부분입니다.
전자에는 오다노부나가, 토쿠가와 이에야스, 미야모토무사시(宮本武蔵)와 사사키고지(司馬 遼太郎)로, 다테마사무네(伊達政宗) 등등의 좋은 소재가 있고,
후자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신센구미(新選組:신선조)란 좋은 소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를 뛰어넘어 그 당시의 상황에 주인공들이 어떤 감정적인 고뇌를 했을 지를 추측해서 만들어진 소설에, 계속적인 상상이 추가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전국시대이야기는 500년이 넘도록 살이 붙여졌고
메이지유신은 150년 정도 이야기에 살이 붙여졌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살을 붙였을까요?



「노서아가비」나 「덕혜옹주」는 그런 시도로 보입니다. 역사책에 적지못하는 고종이나 덕혜옹주의 감정에 접근합니다.
덕혜옹주는 망국의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일 뿐이고, 정치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고종은 좀 사정이 다릅니다. 당시 국가의 최고 책임자였으니까요.
이제가지 고종의 평가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찾아보면 고종은 결코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가 아니였습니다.

드라마에 고종만 나오면 시청률이 2~3%포인트 떨어진다고 후배 PD가 그럽디다. 고종과 조선이 부패와 무능으로 멸망했다는 일본의 논리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오염돼 있습니다. 조선은 결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종은 온몸을 던져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책임감 있는 군주였어요. 고종이 아니었다면 1890년대에 이미 일본에 먹혔을 겁니다.

박문영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작사·작곡,소설『제국의 부활-황제』집필

고종 황제를 직접 만나본 외국인들은 대체로 고종의 해박한 지식과 과감한 정치 감각에 호의를 보였다.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는 “고종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극심한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고종이 명성황후 일가에게 끌려 다녔다는 그간의 평가와는 대조를 이룬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비호를 받고 있던 친일경력자들은 의도적으로 망국의 책임을 황실에만 모는 등 황실인사들이 설 자리가 없게 했다. 이는 절대권력을 원한 이승만 대통령과 망국의 책임을 황실인사에게 책임을 몰아 냉대하였다. 친일경력자들 역시 망국의 실제적 공동 책임자인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면하려고 왕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외 공저/김영사

의문의 창덕궁 방화사건 - 1960년6월6일, 서류 조사 돌입하자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탄 이유는…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게 돼 있는 법이다. 보다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당시 대한여행사 이사장이던 오재경(작고)씨를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장으로 임명해 사무총국 개혁에 나선다. 그는 문교부 국장으로 있던 이창석씨를 데려다가 옛 황실의 재산 관련 서류를 꼼꼼히 모아 조사에 돌입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60년 6월6일 밤 서류를 쌓아둔 창덕궁 내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불에 타 전소된 것이다. 불이 난 뒤 이씨는 “이것은 방화가 확실하다”고 말했지만 사건은 유야무야 덮히고 말았다.

김을한씨는 <인간 영친왕>에서 “그 뒤로 10여 년 동안에 벌써 여러 사람의 사무총국장이 파면 또는 철창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봐 구황실 재산이라는 게 얼마나 무문하고 이권의 대상이 돼왔는가 알 수 있다”며 “사무총국이 황족들에게 겨우 몇십만원의 생활비를 주며 자기 돈을 거저 주듯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욱 더, 근대역사에 대한 좋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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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추장 연설문  (0) 2010.05.21
IT/모바일 | Posted by 동물원 2010. 5. 30. 12:30

포털이 힘을 잃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사용한지 한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이

포탈의 힘이 많이 줄어들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시작하면 포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포탈을 통해서 다른 웹사이트를 찾아들어가거나 블로그로 가거나 했었죠.
야후가 시작한 이런 싸움은 '포탈을 먹는 회사가 인터넷을 먹는다'란 공식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오는 것 같습니다.
모바일이 보편화되고 트위터 같은 SNS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SNS를 시작으로 인터넷을 하게되고 있습니다.
SNS는 포탈처럼 내가 찾아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찾아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SNS내에서 검색, 카페, 채팅, 이메일 등이 모두 경계가 없이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포탈이나 카페, 블로그등은 없어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공중파방송처럼 여전히 방송을 대표하는 하나의 매개체로는 남을 것입니다만
람들은 SNS를 통해서 포탈이나 카페, 블로그 등에 들어가는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SNS를 통해서 해당되는 페이지로 바로 들어가버리니
포탈의 장점인 첫페이지에서 검색을 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겠죠.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기사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인터넷업계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웹사용자 분석업체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올 4월 기준으로 가장 인터넷을 많이 쓰는 30대 남자의 경우 1위인 네이버(NHN)는 방문자가 800만 명이다. 게임 포털인 한게임(200만 명)을 합치면 NHN의 전체 방문자는 1000만 명 수준이다. 다음은 포털 방문자가 710만 명이다. 그러나 블로그 서비스인 티스토리 방문자(370만 명)를 합치면 1080만 명으로 NHN을 넘어섰다. SK컴즈의 포털 네이트(640만 명)는 방문자 수 3위에 그쳤다. 하지만 4위인 싸이월드(610만 명)만 합쳐도 네이버와 다음을 넘어선다. 티스토리·싸이월드 같은 SNS 서비스가 업계 판도를 뒤흔드는 것이다.